IT 컨설턴트에서 티 소믈리에 정승호

차(茶)는 찻잔에 갇혀 있지 않다. 향은 멀리 퍼지고 맛은 깊이 뻗어나간다. 지난 10여년 동안 차에 푹 빠진 정승호<사진> 한국 티(tea)협회 회장의 얼굴이 맑은 것도 차를 닮아서일 것이다.

정 회장은 국내 1호 티소믈리에다. 티마스터가 산지에서 활동하는 전문 재배인을 뜻한다면 티소믈리에는 전세계 차를 두루 섭렵해 그 품질과 특징을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알맞은 차를 추천해준다. 최근 그가 대표로 있는 한국 티소믈리에연구원이 펴낸 ‘티마스터-티의 역사, 테루아, 티테이스팅’은 차로 이어진 세계사이자 세계여행기이다. 정 회장도 곧 차에 이끌려 케냐로 떠날 예정이다.

잘 나가던 외국계 IT컨설턴트 자리를 박차고 차와 인연을 맺은 건 그가 비현실적 낭만파라서가 아니다. 그는 차에서 산업으로써의 성장 가능성을 찾았다. 스타벅스가 브랜드에서 ‘커피’란 낱말을 빼고 차 메뉴를 다양화하는 노력을 하는 것도 그에겐 예견된 일이다.

세계 차 시장의 키는 프랑스 등 유럽이 쥐고 있다. 정 회장은 “이들 차 강국은 자국 땅에서 찻잎 한 장 기르지 않고도 전세계 차를 펼쳐놓고 블렌딩하고 브랜드를 입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도 세계의 다양한 차를 들여와 가공해 수출하는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단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차도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한국 티소믈리에 연구원엔 빽빽하게 세계 각국의 차가 들어차 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여러 차를 배합하고 섞어 세상에 없던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차는 무궁무진하다. 정 회장은 “전통적인 다례(茶禮)부터 간편한 아이스티까지 차 시장은 소비층을 정확히 겨냥해 상품을 세분화할 수 있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가능성이 크다는 건 역설적이게도 현재 상황이 척박하단 의미이다. 우리의 차는 찻잔에 갇혀 있다. 국내 차 생산량은 세계 최하위다. 소비량도 최저 수준이다. 우리가 알고 접하는 차는 극히 일부다. 녹차에 부과되는 관세는 쌀과 같은 최고 수준이다. 세계의 차가 들어올 길이 좁은만큼 우리의 차가 나갈 길도 막혔다. 정 회장은 “세계 유명 티소믈리에들이 한국에 차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들의 구매 품목군에 올려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의 차가 아무리 개성이 좋아도 전세계 차 소비자들의 리스트에 올라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단 게 정 회장의 지적이다.

정 회장은 “커피가 지난 15년간 한국에 정착하고 발전하면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에게 창업부터 취업까지 창조적인 역할을 했습니까. 이제 차가 그 역할을 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차는 커피와 달리 동양적이다. 동양에 대한 서양인들의 어마어마한 동경까지 융합될 수 있다.

또 바리스타와 로스터 등 커피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을 끌어올리고 자연스레 하나의 문화로 잡리를 잡게 한 것처럼 차도 요소요소에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정 회장은 강조했다. 정 회장이 티소믈리에 교육에 열성을 쏟는 이유다. 그런 저변 인프라가 갖춰지면 우리의 차도 당당히 세계의 차와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 회장은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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