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 이탈리아 그레베를 다시 본다 ( 1 )

‘네가 무엇을 먹는가를 말하라. 그러면 내가 너의 사람됨을 말하리라’.

18세기 프랑스의 법률가 브리야 사바랭이 그의 저서 ‘미각의 철학’에서 한 말이다. 

패스트푸드로 통칭되는 ‘속도지향의 사회’대신에 ‘느리게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슬로시티(Slow City)운동’이 유럽의 작은 마을에서 전 세계로 ‘조용히’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도시가 바로 이탈리아의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 약칭 키안티)이다. 피렌체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조그만 시골 도시로 인구라고 해봐야 기껏 1만여 명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군단위의 마을에 가까운 이곳이 세계 20여 개국 200여 도시의 ‘느림 왕국’의 도읍지이자 세계적인 생태휴양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레베는 ‘와인과 올리브의 도시’이기도 하다. 해발 500~700m 산간에서 계단식 경작을 하는 포도원과 올리브 농장이 많은 이곳의 포도·올리브·스파게티 공장은 모두 가내수공업이다. 옛날방식 그대로 하기에 생산 공정에서 공해나 쓰레기 발생이 적고 각종 첨가물도 없다. 그야말로 슬로푸드가 생산되는 것이다. 이러한 식품들은 지역 내에서 소비되고 관광객에게는 비싼 값으로 판매된다.

이곳에선 피자도 패스트푸드가 아닌 슬로푸드이다. 대량생산이 아닌 이탈리아식 전통요리법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식당의 음식도 돼지고기, 토끼고기, 꿩고기 등 지역 토속 요리가 유명하다. 이 지역 고급 레스토랑도 지역산 포도주를 판매하는데 ‘투스칸 와인’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고 있다. 매년 9월말 10월초엔 ‘포도 페스티벌’이 열린다. 슬로시티 그레베에는 대형 승용차나 패스트푸드점 그리고 코카콜라 마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청량 음료나 인스턴트식품 자판기도 보기 힘들다. 거대자본의 패스트푸드나 대형쇼핑몰의 입점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로 치면 생협마트가 있을 뿐이다. 외지인의 부동산매매거래도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시청 광장 주변에는 지역에서 난 흙으로 만든 보도블록이 깔려있고, 쓰레기통도 흙을 구워 만든 테라코타 도자기로 만들어 놓았다. 마을 어디를 가더라도 지역민이 경영하는 작은 상점에는 늘 신선한 식품이 판매되고, 작은 식당에는 슬로푸드를 판매한다.

그레베는 옛 수도원 시설로 지금은 지역 종교예술 박물관이기도 한 성프란체스코성(城)을 중심으로 걸어서 30분이면 중심가를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레베에는 옛 건물을 리모델링한 호텔과 숙소들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호텔을 비롯한 숙소에 에어컨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에어컨이 없는 이유는 옛 벽돌 건물의 벽이 두꺼워 창문과 셔터를 여닫는 것만으로 냉난방이 가능할 정도로 자연 에어컨 시스템이 잘 돼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에어컨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날이 1년에 며칠이 되지 않는데다 그레베의 건축법은 에어컨 시스템을 창문에 설치하는 것도 허가를 얻어야 하고, 설치비도 비싸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그레베는 전통의 지혜를 오늘날 되살린 세계에서도 손꼽을 만한 도시인 것이다.

그레베는 이런 것 때문에 생태관광 체험지로 입소문이 퍼졌다. 호텔이나 민박집에서도 밤에는 모기장을 치든지 모기향을 피워야 한다. 그러나 숙소에서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딱정벌레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호기심이 있는 여행자들은 전갈, 지네, 도마뱀 등도 쉽게 볼 수 있다. 취향에 따라 호감이 다르겠지만 마을 자체가 생태박물관인 셈이다.

(계속)

출처: 김해창 교수의 에너지전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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