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 이탈리아 그레베를 다시 본다 ( 2 )

슬로시티운동은 지난 1999년 10월 그레베시와 인근의 오르비에토, 브라, 포시타노 등 작은 도시의 시장들이 모여 세계를 향해 ‘느리게 살자’고 호소한 데서 비롯됐다. 당시 그레베 시장이던 파울로 사투르니니씨가 주민들과 세계를 향해 패스트푸드에서 벗어나 지역요리의 맛과 향을 재발견하고 생산성 지상주의와 환경과 경관을 위협하는 바쁜 생활태도를 몰아내자고 강조하고 나섰던 것이다.

처음엔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그는 ‘슬로(Slow)’라는 것이 불편함이 아닌 자연에 대한 인간의 기다림이란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다. 시대를 거꾸로 가는 발상의 전환이었던 것이다.

사실 슬로시티운동의 시작은 슬로푸드(Slow Food)운동의 연장선에 나왔다. 슬로시티운동은 ‘먹을거리야말로 인간 삶의 총체적 부분’이라는 판단에서 우선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찾고 도시 전체의 문화를 바꾸자는 운동으로 확대된 것이다. 지난 1986년 이탈리아 로마에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널드 햄버거가 진출해 이탈리아 전통음식을 위협하자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브라에서 시작된 것이 슬로푸드운동이다.

슬로푸드의 심벌은 느림을 상징하는 ‘달팽이’이다. 그래서 광우병이 유럽을 휩쓸 때도 이곳 그레베는 안전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슬로푸드의 중요성을 유럽 사람들에게 환기시켰을 정도라고 한다.

슬로시티는 자전거 이용하기, 소음 제거, 보행자구역 확대 등 ‘7가지 기본규정’을 토대로 지역풍토와 여건에 맞게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슬로시티의 적정 규모는 5만 명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대도시의 경우 기초지자체 수준으로 낮춰 구(區)나 동(洞) 차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슬로시티연맹 관계자들은 조언한다.

전반적으로 시민들의 생활의 속도를 늦추는 반면 여유 공간과 시간을 확대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슬로시티는 자연과 전통 그리고 공동체를 지켜 지속가능한 마을을 만드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슬로시티연맹의 사무국은 이탈리아 오르비에토(Orvieto)에 자리잡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도 2008년 4월 사단법인 한국슬로시티본부(이사장 장세현, 한양대 명예교수)가 생겼고, 전남 신안군, 장흥군, 담양군, 완도군과 경남 하동군, 충남 예산군 등 11개 지자체가 슬로시티에 가입했다. 부산시는 도시 규모와 걸맞지 않게 슬로시티의 철학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2009년에 슬로시티 협력도시로 가입하기도 했다.

‘슬로시티의 수도’ 그레베시의 고용률은 100%이며 소득수준도 이탈리아의 중소도시 평균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또한 생태관광도시로 명성이 높아감에도 불구하고 범죄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다는 것이다. 자연과 전통 그리고 공동체를 살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속가능성을 살리는 지혜이다. 에너지전환에 앞서 마인드전환이 필요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느리게 살자’는 정책이 오히려 문화와 경제를 살리는 ‘경쟁력’의 원천이며 지역에서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도시. 그레베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슈마허)’ ‘느린 것이 아름답다(칼 오너리)’는 것을 보여주는 우리시대의 ‘오래된 미래’이다. 

출처: 김해창 교수의 에너지전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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